본문 바로가기

사가지 있는 인문학

중용 제10장 10-3. 막유이교, 부보무도, 남방지강야, 군자거지.

중용 제10장 10-3. 寞柔以敎, 不報無道, 南方之强也, 君子居之막유이교, 불보무도, 남방지강야, 군자거지.


옥안 : 『노자』 33장에 "타인을 이기는 자를 힘세다 할지 모르지만 자기를 이기는 자야말로 강한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고, 36장에 "부드럽고 약한 것이 딱딱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라는 구절이 있고, 43장에 "하늘 아래 가장 여린 것이 하늘 아래 가장 단단한 것을 앞달린다."라는 구절이 있고, 또 52장에 "연약함을 지킬 줄을 아는 것이야말로 강함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남방지강을 보통 이러한 노자의 사상으로써 해설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로 노자의 사상은 우주론적·존재론적 맥락에서 "유약"과 "강강"을 대비시키고 있으며 그것은 거의 자연주의적 명제에 가깝다. 유약이 강강을 이기는 것은 자연의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관유"는 그러한 근원적 가치의 전도를 말한 것이 아니라 치세나 접인에 있어서의 관용을 말한 것이다. 관대한 잣대로써 백성들을 부드럽게 다스린다는 것이다. 『국어』「제어」에는 "관혜유민"이라는 말이 있다. 너그럽게 은혜를 베풀어 백성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든다는 뜻이다. 『순자』「불구」편에 "군자는 관대하여 사람을 깔보는 법이 없다."라는 말이 있고, 또 "부드럽게 따르면서도 흐르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모두 유가적 맥락에서 인간관계의 덕성을 말한 것이다. 도가의 맥락과는 다르다. "불보무도"도 노자가 말하는 "보원이덕"과는 다르다. 노자가 말하는 것은 오히려 예수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는 로기온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불보무도"는 맹자는 다음과 같은 논의에 더 깊게 상통한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나를 대하기를 횡역으로써 하면 군자는 반드시 스스로를 반성하여, 내가 반드시 인仁하지 못하였는가보다, 내가 반드시 예禮가 없었나보다, 어찌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겨날 수 있겠는가 한다. 스스로 반성하며 인하였으며, 스스로 반성하여 예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횡역이 전과 같으면 군자는 반드시 스스로를 반성하여 내가 반드시 충하지 못하였는가보다 한다.


   『순자』「영욕」편에도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대저 타인과 참지 못하고 쌈박질을 잘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가 옳고 남은 틀리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자기는 진실로 옳을 뿐이요, 타인은 진실로 틀릴 뿐이니, 그렇게 되면 나야말로 군자요 타인은 모두 소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군자라는 사람이 소인배들과 같이 서로 헐뜯고 싸워 자신을 해치고

       마니, 아래로는 자기 몸을 잊은 것이요, 안으로는 자기 부모를 잊은 것이요, 위로는 자기 임금을 잊은 것이다.

       어찌 그 과실이 심하다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이 모두가 합리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하여 치열한 자기반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거지居之"의 "거居"는 "거拒" "거據"의 뜻이 있다. 자기 삶의 방식을 근거지운다는 뜻이다.


주희옥안 : "관유이교"라는 것은 무한한 포용력과 겸손한 순종심을 가지고 타인의 불급한 점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불보무도"는 나에게 횡역의 사태가 다가올 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폭력으로써 되치지 않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남방은 풍기가 유악하여, 포용하고 인내하는 힘이 범인의 수준을 넘어가는 것을 강으로 인정한다. 군자의 도라 해야 할 것이다.


장구옥안 :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의 비폭력·비타협 저항운동이 이러한 남방문화의 정신과 상통하는 것일까? 간디는 써로우 Henry David Thoreau, 1817~62에게서, 써로우는 노자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10-4. 衽金革, 死而不厭, 北方之强也. 而强者居之.임금혁, 사이불염, 북방지강야. 이강자거지.

10-4. 병기와 갑옷을 입고 전투에 임하여 죽더라도 싫어하지 않는 것은 북방의 강强이다. 네가 말하는 강자는 결국 여기에 거居하겠지.


옥안 : "금"은 병기이다. 금속으로 만든 무기를 가리킨다. "혁"은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가리킨다. "금혁"은 추상화되어 "전투"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임"을 정현이 "임, 유석야"라고 주를 다는 바람에 그것이 거의 정설화되어 주희가 계승하였고,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해설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어색하다. "석"이란 "자리," 혹은 "깔개"라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그 뜻은 전장에 나가 갑옷을 깔고 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현의 주 때문에 이러한 억지해석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 해석은 "임"의 본의로 간주하기 어렵다. 정현은 "임衽"을 "인茵"의 가차자로 보아서 그렇게 해석한 것이다. "임"은 본시 옷의 깃, 혹은 섶을 의미한다. 우리 말에 "옷깃을 여민다"는 말이 있는데, "임금혁"은 갑옷을 단정하게 입고 무기를 차고 전투에 임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야전에서 갑옷 벗고 쓰러져 자는 모습보다는, 전투에 임하는 공격성을 강하게 나타내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로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래야 남방지강을 의하는 "관유이교"와도 강렬한 대비가 성립한다. "임"은 "임"의 가차자로 볼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되면 전쟁에 나가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사이불염"의 "이"는 단순한 접속사로 보기보다는, "사"를 강조하는 조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절에서 가장 결정적인 해석상의 문제는 "이강자거지"의 "이"에 있다. 보통 "이"를 단순한 접속사로 보아 특별히 해석을 안하고 지나쳤는데, 여기의 "이"는 제2절에서 문제가 되었던 "억이강여"의 "이"와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강자거지"는 "여강자거지"가 된다. 앞서 지적한 대로 공자는 3종류의 강을 말한 것이 아니라, 남방지강과 북방지강을 대비적으로 언급하고 그 맥락에서 자로가 지향하는 강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자로 네가 마음에 두고 있는 강이란 결국 "북방지강"에 해당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셈이 된다. 자로의 스타일은 북방민족의 전형적 용맹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혁"이라는 말과 관련하여 공자와 동시대의 문명으로 가장 호전적이고 무술과 기마술과 호전성과 재빠른 이동성과 금속제련기술에 뛰어났던 스키타이 문명을 생각할 수 있다. 스키타이 문명은 북방아시아대륙에서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스키타이 문명이 역으로 아시아의 북방문명에 영향을 주었고, 또 그 영향이 조선문명에까지 뻗쳐 내려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북방기마민족의 호전성이란 공자시대에도 하나의 관념으로서 정형화되었고 그 구체적인 근거가 확보된다고 말할 수 있다.


주희옥안 : "임衽"이란 자리, 깔개이다. "금"은 과나 병기를 총칭하는 말이고, "혁"은 갑옷류를 총칭하는 말이다. "북방"은 풍기가 강경하기 때문에 과감한 힘으로써 타인을 이기는 것을 강으로 삼으니, 이는 강자가 종사하는 일이다.


장구옥안 : 지극히 평범하고 진부한 해석이다. 주희는 "이"이 특별한 함의에 관하여 주목하지 않았고, 질문자인 자로가 지향하고 있는 강함이 남방지강과 북방지강의 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맥락적으로 논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