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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지 있는 인문학

중용 제8장 자왈:"회지위인야, 택호중용, 득일선, 칙권권복응이불실지의"

중용 제8장 8-1 자왈: "回之爲人也, 擇乎中庸, 得一善, 則拳拳服膺而弗失之矣


8-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안회의 사람됨이란, 항상 중용을 택하되 하나의 선한 일이라도 깨닫게 되면, 그것을 진심으로 고뇌하면서 가슴에 품어 잃는 법이 없었다."


옥안 : "안회"라는 인물에 관해서는 독자들이 안회와 관련된 『논어』구절에 대한 나의 주석을 일별할 것을 요청한다. 공자의 안회 사랑은 어떠한 애인에 대한 연정보다도 더 짙다. 불행하게도 안회는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가어』에 안회가 죽은 나이를 31세로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잘못이다. 안회가 죽었을 때의 나이는 41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마천의 「중니제자열전」에 공자보다 30세 연하라고 한 것이 맞다(少孔子三十歲). 『가어』는 안회의 요절을 너무 과장하다가 그런 실수를 범한 것 같다. 안연이 죽자 공자는 울부짖었다: "아~!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제자의 죽음에 이토록 격렬하게 울부짖는 공자의 모습은 참으로 애절하다. "천상여"가 두 번 반복되어 있는 것은 처절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안연은 공자의 제자라기보다는 공자의 "데미안"이었다.


공자는 본시 매우 천하게 자라났고 자유롭게 컸다. 그리고 매우 예술적이었고 호방한 인물이었다. 우선 키가 2m가 넘는 거구였기 때문에 매사에 스케일이 클 수밖에 없었다. 술을 먹어도 주량이 뛰어났고 노래를 불러도 성량이 컸다. 항상 사람을 압돠는 힘이 거구로부터 우러나왔따. 이에 비하면 안희는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착실하고 치열한 실천가였다. 따라서 한 번 그의 인식구도 속에서 선이 포착되면 그 선을 실천함에 사특함이 끼어들 바늘구멍도 존재할 수 없었다. 안회는 공자가 지향하는 모든 이념의 이상적 구현체였다. 『가어』나 『사기』「열전」이나 모두 안회가 29살에 머리카라이 남김업이 백발이 되었다라고 기록해놓고 있는데 아마도 매우 사실에 가까운 진실한 기록일 것이다. 그만큼 내면의 세계가 치열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가어』「칠십이제자해」는 안회는 덕행으로 저명했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아마도 그러한 무서운 실천력 때문에 울체가 심하여 암에 걸려 죽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공자의 안회사랑은 세속의 정념을 초월하는 그리움이었다.


증자가 한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능하면서 능하지 못한 이에게 물으며, 학식이 적은 자에게 물으며, 가지고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여기고, 가득차 있으면서도 빈 것처럼 여기고, 누가 시비를 걸어와도 따지며 다투지 아니 한다. 옛 적에 나의 친구들이 이런 경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증자에게 있어서 안회는 대선배였으므로 함부로 "친구"라고 부를 처지는 아니지만, 여기 증자의 말은 분명 안회를 모델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안회의 사람됨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할 것이다.


"권권"은 정현이 "봉지지모"(받들어 지니는 모습)라고 훈을 다는 바람에 주희까지 그 해석을 계승하고 있으나, "권拳"은 "근謹," "근懃," "곤悃"의 가차자로서, "진심으로 고민한다" "진정한 마음을 쓰면서 노력한다"는 의미가 있다. 『논어』에 공자께서 안회에 관하여 하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내가 학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많은 놈들이 지루한 표정을 짓지. 그러나 언제든 지루해하지 않고 따라오는 자, 안회일 뿐!" 여기 "권권"은 이와 거의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복응"은 "복"이나 "응"이나 모두 "가슴에 품는다"는 의미의 동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주희는 "응"을 "흉"과 같은 명사로 보고, "복"을 "착"이라는 동사로 보아, "가슴에 꼭 붙들어맨다"는 식으로 해석했는데 결코 원의에 충실한 해석이라고 볼 수는 없다.


"불실지의"에 관해서도 『논어』에 그 뜻을 연상시키는 구절이 있다. 공자께서 안회를 평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애석하도다! 그가 스러지다니! 나는 그의 나아감만 보았고, 그가 중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주희장구: "회"는 공자의 제자 안연의 이름이다. "권권"은 받들어 지니는 모습이다. "복"은 "착"과 같다. "응"은 가슴이다. 하나의 선이라도 그것을 반드시 받들어 모시어 가슴에 저맨다는 뜻이니, 이것은 중용을 택하는데 그치지 않고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안자는 대저 참으로 알았다. 그러므로 그 택하고 또 지킴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행하여 과·불급이 없는 까닭이요, 도가 밝혀지는 까닭이다.


장구옥안 : "회"는 나가 아니고 명이다. 보통 타인을 부를 때 자로 부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군·사·부모는 명으로 부를 수 있다. 그래서 공자가 친근하게 "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본 장의 주제는 "중용을 택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중용을 지속적으로 지켜내는 능력"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데 있다. 이것이 주희의 주석의 포인트이다. 앞 장의 공자의 독백과 대조하여 안회의 탁월함을 공자 스스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사랑과 같은 그런 진실한 학자의 태도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안회와 같은 젊은이들이 계속 이 땅에서 태어나기를 빈다.



용 제9장 9-1. 자왈: "天下國家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中庸不可能也.

9-1. 천하국가가균야, 작사가적야, 중용불가능야, 백인가도야, 중용불가능야


9-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천하국가란 평등하게 다스릴 수도 있는 것이다. 높은 벼슬이나 후나 봉록도 거절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서슬퍼런 칼날조차 밟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용은 능하기 어렵다."


옥안: 공영달은 소에서 주희가 제8장과 제9장으로 나눈 부분을 한 절로 묶어, 이것이 다 안회가 능히 중용을 행할 수 밝히어 중용의 어려움을 피력한 것이라 하였는데, 굳이 그렇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장은 앞 장과는 독립된 것으로 올해려 다음 장의 "강함"의 문제와 연결시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주희는 "천하국가가균"을 "지"의 덕성으로, "작록가사"를 "인"의 덕성으로, "백인가도"를 "용"의 덕성으로 간주하였는데, 그럴듯한 설이기는 하나, 꼭 그러한 개념적 틀에 맞추어 구성된 문장이라 보기는 힘들다.


나는 어려서부터 『중용』을 읽으면서 이 제9장을 몹시 사랑하였다. 무엇인가 나의 어린 감성에 호소하는 절절한 천명이 여기 숨어있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문장의 매력은 분석적인 갠며들의 결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느낄 때 스미는 전체적인 파워에 있다. 가균 → 가사 → 가도의 배열은 자난함의 크레센도를 나타내고 있다. 시퍼런 칼날 위에 선 무녀나 전쟁터의 장군을 연상케 하는 마지막 구절은 무엇인가 감내키 어려운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말해준다. 국가에서 작록에서 백인으로 진행되는 개념들은 그 개념이 지시하는 외연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막상 실존적 느낌이나 부담감은 한없이 날카롭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천애의 절벽에서 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중용"이 등장하낟. 그리고 앞의 세 "가"와 중용의"불가"가 대비된다. 나는 중용의 불가능성을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너무 실천가능성을 봉쇄해버리므로 "능하기 어렵다"라고 마일드하게 번역하였다.


나는 우리나라의 만신 김금화 여사에게서 젊은 날 그의 신내림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김금화는 1931년 음력 8월 18일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 바쿠니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내림굿을 받던 날, 신엄마인 외할머니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면서 열일곱 살의 금화의 손을 잡고 이와 같이 말슴하시었다고 한다: "만신이 된다는 것은 뭇사람들의 참지 못하는 고통을 슽하게 참아내라 허느니라." 금화는 열일곱 살 때까지 한 오 년 동안 각혈을 하면서 심하게 앓았다. 그녀에게 신이 내리던 날, 정월 대보름달 밑에 하늘을 쳐다보니 갑자기 하늘에서 우루룽쾅쾅하는 거대한 소리가 나더니만 별들이 우수수 떨어지더란다. 그리고 맨발벗고 논두렁을 미친 듯이, 떨어지는 별을 피해 뛰어갔는데 살얼음이 얼어붙은 개울로 첨벙 떨어지고 말았다. 살을 에는 듯한 북풍이 싸늘하게 불고 개울물은 한없이 차가웠지만 불덩어리와 같은 몸뚱이가 그토록 시원하더란다. 순간 기절하고 말았는데 개울 위에 떠있는 몸이 다리가 등뒤로 굽어 머리에 붙었는데 꼭 보름달처럼 둥근 모습이었다고 했다. "외기러 가자! 불리러 가자!"(밖으로 가자! 바람에 불리듯 떠돌아 다니자!) 금화는 이렇게 외쳤다. 그 뒤로 작두를 탔다. 내가 작두 위에서 버히지는 않느냐고 물으니 신내림이 강하지 않을 때는 발바닥이 질척질척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춤을 계속 추는 것이다. 여린 처녀의 몸매와 그 끔찍한 버힘의 느낌이 인간존재의 모순과 고뇌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하여튼 본 장은 정치적 수완의 발휘나 세속적 명예의 거부나 신체적 용기의 과시보다 중요의 온전한 실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드라마틱하게 웅변하고 있다. 공영달의 소에 "천하"는 천자의 다스림의 대상이라고 했다.


"가균야"의 "균"은 본시 땅을 고르게 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글자이다. 다스림의 혜택이 백성에게 골고루 미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논어』에 공자의 말로서 "불환과이환불균"이라는 말이 수록되어 있는데 유가에는 분명하게 평등의 이상이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 롤즈의 "원초적 입장"이나, 모두에게 직무나 지위가 열려있는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 하에서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평등제한원칙"은 모두 유가적 "균"의 사상과 관련이 있다. 사회의 불평등을 최소화하고 사회협동을 극대화하자는 롤즈의 정의이론은 피상적인 공동체주의에 의하여 함부로 비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공동체주의가 롤즈의 정의이론은 보완할 수는 있으되 본질적인 안티테제는 되기 어렵다.


주희장구: "균"이라는 것은 고르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처음에 제시한 세 명제는 각기 지·인·용의 사건에 해당되며, 천하의 지난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삼자는 모두 한 편에 치우쳐있기 때문에, 자질이 지·인·용에 가깝고 또 힘써 노력하는 자라면 모두 내낼 수가 있다. 그러나 중용에 이르러서는 쉽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의가 정미랗게 인이 몸에 익어 한 터럭이라도 인용의 사사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 아니면 중용에는 미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의 삼자는 어려울 듯하지만 수비고, 중용은 쉬울 듯하지만 어려운 것이니, 이래서 사람들 중에 중용에 능한 이가 적은 것이다.


장구옥안 : "백인가도야"라는 표현 속에 용의 테마가 들어있고, 다음의 제10장이 강, 즉 용의 테마를 다루고 있으므로 그 양자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보면, 순의 대지로부터, 안회의 인을 거쳐, 자로의 강으로 흘러가고 있으므로 지·인·용의 테마를 연결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