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제6장 6-1(2) 子曰: "舜其大知也與! 舜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其斯以爲舜乎!"순기대지야여! 순호문이호찰이언, 은악이양선, 집기양단, 용기중어민, 기사이위순호!"
소크라테스는 타인의 "스승"이 된 적이 없다. 오직 "물었을 뿐이다." 그는 지식을 상품화하여 비전秘傳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물었는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그가 왜 죽음에 처하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그 실상을 매우 리얼하게 전해주는 문학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최후 법정진술을 기록한 『변론Apologia』이다. 바로 이 자리에 플라톤도 있었으며, 이 진술의 당장에서 기록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가장 생생한 모습을 전하는 역사적 기록으로서, 그리고 그것이 타인의 그에 관한 기술형식이 아닌 그 본인 스스로 말하는 솔직한 자전적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매우 사료적 가치가 높다.
소크라테스의 젊은 시절부터의 친구였으며 민주당원이었던 카이레폰은 델포이신전에 가서 신탁을 구한다. 그는 그곳에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곳의 무녀는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대답한다. 많은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근세정신에 의하여 포장된 왜곡된 철학사의 기술 때문에, 매우 이성적이기만 한 인간으로서 생각하지만 그는 매우 충실한 신의 사도였다. 그는 신적인 권능의 종이었으며 신에 대한 철저한 복종 속에 산living in complete obedience to God 인간이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이 신탁의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없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현명하다는 것인데 그긋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수긍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신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하여 고민을 거듭하다가, 만약 그가 이 세상에서 자기보다 실제로 더 지혜로운 자를 찾아내기만 한다면, 신전에 가서 신탁을 겸손하게 반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세속에서 자기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는 평편을 얻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처음에는 정치인, 시인들, 비극 작가, 그리고 탁월한 장인들을 차례로 찾아다닌다. 그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져 본 결과, 그는 그들이 모르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으며, 또한 소크라테스 자신은 최소한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보다는 지혜롭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신이 내린 사명에 의해 탐구를 계속한 결과, 가장 높은 평판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가 다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며, 반면에 하찮게 여겨지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가 다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며, 반면에 하찮게 여겨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보다 더 지혜롭고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끊임없는 "캐물음의 과정"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그들의 위선이 폭로되어 소크라테스는 당대 아테네의 대부분의 명망 높은 사람들의 증오를 얻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을 지켜보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통쾌감을 얻고 소크라테스를 지지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결과적으로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짖거 위선으로부터 깨어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젊은이들의 마음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고발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만약 이 "캐물음"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면 그는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 『중용』에서는 순임금의 대지의 첫 덕목이 "후문"이었다. 묻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 역시 "호문"의 덕성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이러한 캠루음이 신에게서 받은 사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실이야말로 신을 따르는 일이며, 돈과 명예와 지위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아테네의 시민들을 지혜와 진리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드는 것이얌라로 신의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신께서는 소크라테스처럼 자기의 지혜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파라독스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최종결론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사형을 구형·언도 받을 정도로 아테네의 명망세력들에게 미움을 사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자신이 철학을 추구하고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확신했다. 그는 목숨이 붙어있는 최후 순간까지 지혜를 사랑하고 진리를 구너면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진술의 최후 논면은 이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음의 길로,
여러분들은 삶의 길로.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 중에서
어느 길이 더 위대한 길인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Now it is time that we were going,
I to die and you to live,
but which of us has the happier prospect
is unknown to anyone but God.
우리는 기존의 기술방식의 편견에 의해 소크라테스와 예수가 매우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소크라테스는 이성적 논리의 원조이며 예수는 신화적 구원의 조형을 제시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동일한 헬레니즘적 패러다임의 지혜인들이었으며 둘다 그들이 살고 있었던 시대의위선과 싸웠으며, 둘 다 거의 같은 방식으로 기존의 세력들에게 미움을 샀으며, 둘 다 같은 방식의 정치적 재판과정을 거쳐쏙, 둘다 신에 대한 절대적 복종의 믿음과 삶의 자세를 지니고 있었으며, 둘 다 자기들이 예견하고 선택한 삶의 종말의 방식에 따라 생애를 마감했다. 오직 다른 것이 있다면 예수에게 "부활"이 첨가된 것뿐이다. 예수가 살고있던 헬레니즘시대에 있어서, 소크라테스라는 이상적 상像은 윤리적 정직성ethical integrity의 프라임 모델이었으며, 독재자의 손에 처형되는 것을 자처함으로써 자신의 윤리적·철학적 신념에 대한 궁극적 시련과 승리를 과시한 위대한 헌신의 율로지eulogy였다고, 버튼 맥Button L. Mack은 주장한다(The Lost Gospel, NY:HarperCollins, 1994, p.217). 따라서 예수의 종말론적 신화상의 형성에 소크라테스의 이미지는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시대적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헬레니즘과 헤부라이즘의 융합은 이미 시대적 필연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호문"과 공자나 순이나 자사가 말하고자 하는 "호문"은 비슷한 면도 있지만 매우 성격이 다른 것이다.
그것이 산파술maieutic method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상통처가 있을 수 있다. 둘 다 어떠한 "앎"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기 위한 "캐물음"은 아닌 것이다. 둘 다 어떠한 "앎"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기 위한 "캐물음"은 아닌 것이다. 둘 다 독단을 배제하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타인의 무지를 끊임없이 폭로하기 위한 것이다. 반증의 사례로써 상대방의 판단이 정확하거나 포괄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변증법의 계기인 것이다. 그러나 『중용』에서 말하는 "호문"은 상대방의 무지를 일깨워주는 작업이 아닐, 자기자신의 무지를 일깨우는 작업이며, 자신의 지식을 시중화하는 작업이며, 자기자신을 겸손하게 비우는 격물치지의 과정이다. 어려분들은 「팔일八佾」15에 나오는 "매사문"이라는, 공자가 당시의 대관들에게 듣는 핀잔의 언사를 기억할 것이다. 공자는 예악의 전문가로서 대사구의 지위에까지 올라갔다. 대사구로서 그는 태묘의 대제에 참석해야만 했다. 그것은 노나라의 특수성이 있었기 때문에 천자의 예에 준한 대제였다. 그런데 공자는 서숨지 안혹 복잡한 절차의 굽이굽이에서 매사를 물었다. 공자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고관들은 한결같이 공자를 비아냥거리며 누가 저런 촌놈이 예를 안다고 말했던가, 하면서 비하시켰다. 그러나 공자는 그 말을 듣고 당당히 외친다:"이 녀석들아! 내가 지금 묻는다고 하는 이것이 바로 예禮니라! 是禮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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