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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지 있는 인문학

중용 제1장 천명지위성 6

天命之謂性 6

천명지위성



할 말은 끊임없이 많으나, 본 서가 어디까지나 『중용』의 역주서이므로 『성자명출』의 해석은 여기서 자제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그 전개된 논의를 총괄적으로 검토해보면 자사의 사상은 성을 정의 그라운드로 파악하는 확고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성자명출』의 상당부분이 "악론"이다(전체의 3분의 2 이상). 『예기』의 「악기」에 상응하는 논술이지만, 「악기」는 악을 예악이라는 사회제도의 측면에서 고찰하기 때문에 치민治民의 정치적 수단으로 간주하는 측면이 강하다. 악은 한마디로 선왕지도先王之道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자명출』의 악론은 이렇게 이데올로기화 되어있질 않다. 그것은 순수한 심성론의 기초 위에서 인간의 정념을 어떻게 음악을 통하여 다스릴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음악을 통하여 심성을 도야하고 덕행을 실천하고, 정의로운 인격을 완성하는 악교의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교라는 것은 인간의 존재 내면에 덕을 생성시키는 것인데(敎, 所以生德於中者也), 그 생덕의 방편으로 예보다는 악이 더 일차적인 효용가치를 지닌다고 본 것이다. 정나라나 위나라의 템포가 빠르고 섹시하고 음탕한 가사를 포함하는 음악에 대해서도 『성자명출』은 결코 부정적으로만 말하고 있질 않다. 아무리 이념적으로는 정위지악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사람들이 결국 그 매력에는 먼저 빠져든다는 것이다(鄭衛之樂정위지악, 則非其聲而從之也즉비기성이종지야). 


『성자명출』에는 "고악용심古樂龍心 익악용지益樂龍指"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고악" "익악"이 모두 당대에 이미 음악평론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음악평론의 터미놀러지terminology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즈음 우리나라 국악계에서도 "정악"과 "속악"이라는 말이 대비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아마도 비슷한 유비가 성립하는 말처럼 보인다. "고악"이 선왕의 정악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소韶』『하夏』와 같은 아악을 가리키는 말이다. "익악"은 거기에 후대에 증보된 같은 계열의 음익인 『뢰賚』『무武』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또 "익益"을 "일溢"이나 "음淫"자와 상통하는 것으로 보아 정위지악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나는 후자의 설을 취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본다. 다음에 문제가 되는 글자는 동사에 해당되는 "용"자인데, 상박간에는 이것이 "융隆"으로 판독될 수 있다고 본다(복모좌 판독). 그리고 이 "용龍"은 "동動"이나 "농弄" 그리고 화和"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고악용심"은 고악은 마음을 융성하게 한다, 마음을 움직인다, 마음을 완롱한다, 마음을 조화롭게 한다 등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指"에 관하여서는, 그것을 "기耆"나 "지恉"의 뜻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석가들은 말하나, 그것은 음악을 근본적으로 이해 못하는 사람들의 억지춘향의 훈고일 뿐이다. "지指"는 문자 그대로 손가락 이외의 어떤 듯도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 구절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凡古樂龍心, 益樂龍指, 皆敎其人者也.

                  범고악용심, 익악용지, 개교기인자야

 

                    대저 고전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재즈음악은 사람의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런데 이 양자가 모두 사람의 품성을 교화시키는데 필요한 것이다. 


"고악"은 『뢰賚』『무武』『소韶』『하夏』와 같은 정악을 가리키고, "익악"은 정위지성과 같은 속악을 가리킨다. 정악은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감동을 준다. 그러나 속악은 사람의 손가락을 움직이고 피부로 직접 와닿는다. 고대세계에서는 음악의 감상자와 작곡자와 연주가의 구분이 없었다. 속악은 보다 직접적인 매력이 있다. 그래서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의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다. 정악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반응하지만 속악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몸으로 반응한다. 이 다음에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문구가 있다. 그 심오한 의사가 너무도 감동적이다. 


                 凡至樂必悲, 哭亦悲, 皆至其情也. 哀樂, 其性相近也, 是故其心不遠.

                 범시악필비, 곡역비, 개시기정야. 애악, 기성상근야, 시고기심불원.


                    대저 지극한 음악은 반으시 비장감을 자나내기 마련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감정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모두 인간의 지극한 감정의

                    진실에 도달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슬픔과 기쁨은 그 성이 서로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의 지향성 이 결국 한데로 모아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 모든 주석가들이 "지악필비"라는 물에 숨어있는 펀pun적인 용법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의 「악기」의 문장을 보라!


                夫樂者, 樂也. 人情之所不能免也, 樂必發於聲音, 形於動靜, 人之道也.

               부악자, 악야. 인정지소불능면야, 악필발어성음, 형어동정, 인지도야.


        ,         대저 음악이라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인간 존재의 정감이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악은 성음에서부터 발현되는 것이지만 결국 사람의 몸의 동태와 정태로 구현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도의 중요한 측면이다. 


따라서 "악"과 "낙"은 같은 의미로 쓰이며 그 뜻이 중첩되어 있다. 이런 글자를 쌍관어라고 말한다. "지악필비"는 "지락필비"로 읽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지극한 즐거움은 반드시 비장한 느낌으로 전환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역시 그뜻의 배면에는, 이 문장이 어디까지나 악론의 맥락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위대한 음악, 지극한 음악, 기쁨과 환희를 선사하는 음악은 반드시 비장감을 띠게 된다"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진실된 정감에 도달하게 되면 애와 락은 하나로 통섭되고 융합된다는 것이다. 앞에 있는 문장, "웃음은 예악의 좀 얕은 차원의 영향이다. 笑禮之淺澤也소예지천택야"라는 표현이 이러한 논의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토록 이들이 인간의 "정"과 "악" 관하여 심도있는 논의를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공문에서 선비를 길러낸다는 일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사람을 효율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제도나 커리큐럼이나, 서적이나, 자재가 빈곤한 상황이었다. 공자가 자기의 생애를 요약한 유명한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보자!


             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생이란 시에서 배움을 일으키고,

             예에서 원칙을 세우며, 악에서 배움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여기 "시"라는 것은 노래를 따라 부르는 행위이다. 그런데 "악"이라는 것은 기악곡을 마스터하고 작곡을 할 수 있는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즉 인생이란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작고할 수 있는 작의 경지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자사는 정성을 삐딱하게 보지 않았다. 그러한 음탕한 질감의 노래나 가사도 인성을 계발하는 데 다 도움을 준다고 보았던 것이다. 매우 개방적인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음악처럼 인간의 품성을 순화시키는 효율적 방법이, 고대사회에서는 또다시 있을 수 없었다. "음악"이란 오늘과 같이 기악이나 노래를 감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작곡을 하고, 또 정교하게 노래에 맞추어 다양한 춤을 추는 것(놀이문화와 제식과 예의와 관련됨)을 의미했다. 이것은 고도의 "몸의 수련"이었으며 "정감의 순화"였으며, "도덕의 달성"이었다. 공문에서는 미학aesthetics과 윤리학ethics은 하나였다. 심미적 판단은 곧 윤리적 판단을 포섭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다 해도(괴팍한 인물도 많겠지만), 대체로 나쁜 사람들은 별로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뒷골목에서 재즈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라 해도 대체로 악인은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