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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지 있는 인문학

중용 제1장 천명지위성 4

天命之謂性  4

천명지위성



성은 생긴 그대로의 바탕이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심"이라고 부를 때는 일정한 지향성intentionality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2구인 "심무정지"는 곽점간에는 "心亡奠志"로 되어있고, 상박간에는 "心亡正志"로 되어 있다. "지"라는 것은 내가 말한 지향성이다. "정"은 "지어일"의 뜻이 그 고의이다. 인간의 심적 에너지는 지향성이 없을 땨는 그것은 구체적인 감정으로서 드러날 수가 없다. 호오의 문제만 해도 우리가 "좋아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 "무엇"을 좋아하는 것이다. "싫어한다"는 것도 반드시 그 "무엇"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 무엇이라는 대상이 바로 심이 지향하는 것이다. 그 대상은 외부적 사물일 수도 있고, 그것을 연상시키는 의식내적 이미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지향성이 있어야 한다. 『성자명출』은 말한다. 그 지향성은 사물의 촉발을 기다려서 그 원형이 형성되고, 기쁨의 감정을 기다려서 비로소 발출된다. 여기 "열"이라는 것은 그 대상을 받아들이는 판단이다. "대물"이라는 것은 사물의 인식을 말하며(지식의 단계), "대열"은 나의 의식내부로의 진입을 의미한다(판단의 단계). 이러한 진입은 결국 나에게 호·오의 감정을 성립시킨다. 그 감정을 학습을 통하여 일정한 통제하에 둠으로써 조화로운 인격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대습이후정"이라는 말은 『중용』의 "수도지위교"에 상응하는 언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성"을 다시 규정하는 포탄선언에 가까운 파격적 명제가 나오고 있다: "희·노·애·비의 기야 말로 성이다" 우리나라의 도학자 이퇴계가 그토록 자기가 사모하는 주자의 조종격인 자사가 이런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기절초풍하여 "이를 어찌할꼬" 비통해하면서 앓아누웠을 것이다. 아마도 그와 논쟁을 벌인 기고봉 1527-72은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기"라는 표현은 물론 "리"에 대하여 상대적인 현상적 개념이 아니다. 맹자는 「공손추」상2, 그 유명한 "부동심"과 ㅗ연지기"를 ㅁ라하는 자리에서 이와 같은 말을 한다: "부지, 기지수야;기, 체지충야." 여기서 기는 몸을 꽉 채우는 어떤 바탕, 질소, 그 생명력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기를 이끌어가는 방향성이 곧 지이다.


이 맹자의 말에 대한 조기는 다음과 같으 주를 달았다: "지라는 것은 심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기라는 것은 형체에 가득차는 것으로서 희노의 감정을 일으킨다. 지는 기를 이끌고 가며, 항상 그 이끌 수 있음을 헤아린다. 志, 心所念慮也심소염려야. 所以充滿刑體爲喜怒也소이충만형체위희노야. 志, 師氣而行之사기이행지 度其可師也도기가사야" 여기서 말하는 개념들은 『성자명출』의 언어와 대체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성은 기이며, 기는 희·노·애·비의 기이다. 희·노·애·락을 말할때는 이 네 감정은 평면상의 나열처럼 보인다. 그러나 희·노·애·비에 있어서는 일견 희·노와 애·비가 대비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문제에 해답을 제공하는 중요한 단서가 같은 형문간백자료인 『어총2』에 나타나고 있다. 제29간에 "喜生於性, 樂生於喜, 悲生於樂." 이라는 말이 있고, 제31간에 "慍(怒)生於性, 憂生於慍, 哀生於憂."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을 도표화해보면 다음과 같다.


                ↗희喜→락樂→비悲

       성性

                  ↘노怒→우憂→애哀



우리는 이러한 논의를 통하여 희의 발전된 감정이 비悲이며, 노의 발전된 감정이 애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감정의 정의문제와 관련하여 그 정당성을 오늘날의 발전된 행동심리학의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성으로부터의 원초적 발출이 희노喜怒(기뻐하고 노여워함) 이며, 그 발출의 지향성에 따라 그것이 비·애(비통함과 애련함)의 감정으로 발전해간다는 생각은 고인들의 사유이 심도를 말해주는 것이다. 대체로 희극적 감정보다 비극적 감정이 보다 중층적이고 세련된 감정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러한 문제는 이들이 얼마나 감정을 중시했는가를 말해준다. 그리고 감정이 단순한 원초적 감정이 아니라 인간을 총체적으로 지배하는 고도의 복합적·중층적 체계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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