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생 입대 첫날...
싸들고 온 보따리에서 하나하나 검열을 받으며, 25년 삶에 자유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며, 여기에서 왜 이렇고 있는거지?
별별생각이 다 들었다. 왜 우리는 저 저승사자 같은 뇨자(?)한테 내 뒤로는 80여 명의 20대 중반의 대학을 멀쩡하게 졸업하고 나름 지성인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각자 싸들고 온 가방을 열어
가격에 꼭 맞춘 이니스자유, 미쇼 같은 저가의 화장품 브랜드를 선보였다.
조금 비싼 가격의 화장품 브랜드를 가져온 모 동기의 떨리는 손과 어디에 둘지 모르는 동공을 느끼며
우리는 화장품이며 팬티며 생리대 하나까지 꺼내 보이며 '왜'라는 스스로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몰래 눈썹깍는 칼이라도 하나 들여온 동기생은 걸리지 않은 사실에
마냥 통쾌해하며 혹시 모를 나의 모나리자 눈썹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난 연필을 가장한 눈썹연필을 하나 들여와 매트리스 밑에 아무도 눈치 못채도록 넣어두고는
느꼈던 그 스릴이란 마흔이 된 지금까지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쾌감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느낀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옷들은 하나도 없이
모두 똑같은 얼룩무늬 상하의에 잘 맞지도 않는 전투화에 발을 맞추기 위해 아침마다 양말을 두세개는 시어야 하는 버릇이 13년간 지속되면서 내 발은 돌때 이후 최대의 고생과 호강을 동시에 누리는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내속까지 까볼듯한 분위기에서 뺏기고 버티고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이던 처자들도
어느덧 저승사자의 샤우팅 한번에 깨깽하고 눈치껏 잘 버티고 숨긴 동기들만 승리의 쾌감을 얻고
똑같은 얼룩무늬 전투복과 보급량도 부족해 수요가 많은 치수의 발을 가진 평범이들의 전투화는
다들 한치수 이상씩 큰 전투화를 지급받고는 설명을 가장한 군대식 속사포 랩으로 알려준 인식표들을 전투복에 꿰매기 시작했다.
얼추 기본기를 대한민국 자랑스런 예비역 병장님 나의 오빠에게 전수받고 온 나는
옥탑방 군린이들에게 전수하며 어디에 무엇을 붙여야 하는지, 전투화 끈을 빨리 매는 법을 전수한 덕에
숨쉴틈을 안겨주었고 '재입대자'라는 오해아닌 오해를 얻으며 나의 첫날을 저물어 갔다.
사복은 팬티와 브라를 제외하고는 모든것이 통일된 복장과 머리스타일, 대학이상 졸업한 20대 여성들은
하나같이 머리속이 바보가 되어 있었다.
전투복을 입고는 어찌나 넓은 소매와 전혀 인체의 굴곡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방물자 보급 회사의 무책임한 디자인에
팔을 잘못들면 겨드랑이가 보일듯했고 바지는 허리의 주름은 마치 얼룩무늬 일바지(일명 몸빼)를 입은 수용자들 같았다.
그리고는 우리는 서로를 보며 그저 소리내지 못하고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웃어대기 시작했다.
웃음소리가 새어나갈까... 철문이 닫힐 거라는 상상도 못한 채
여군 입대 첫날의 바보들은 그렇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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